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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post from 올빼미화원

 

written by 올빼미님 in 201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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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매체에서 질문을 할 때면 항상 제일 먼저 묻는 것이 '왜 농사를 지으시나요?' 입니다. 그 이야기는 사실 깊고 복잡한 이야기가 있어서 제일 답하기 어렵습니다.묻는 사람들은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답을 원하는데 그런 답을 할 수가 없어서요.
이제 봄이 되면 밭으로 가고 싶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간만에 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제가 도시농부가 된 것은 올해로 11년째가 됩니다.
수많은 취미를 거친 저지만, 이 텃밭농사가 이렇게나 오래 계속될줄은 11년전에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를 변화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려고 합니다.
 
제가 주말농장을 시작한지 몇년째 되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나는 왜 농사를 짓는 걸까?"
라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 빠진 거죠.
 
많은 분들이 오해 내지는 착각을 합니다.
바로 '유기농채소'를 먹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는다고요.
그러나 저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목적이라면 이렇게 비싼 돈을 들여 인건비도 안나오는 소규모의 농사를 지을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요.
저는, 그런 분들에게는 믿을만한 유기농매장이 지역마다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는 것이 농부들을 돕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농사를 짓는 것일까요?
 

 

 

제가 강의를 할 때마다 자주 인용하는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김씨 표류기'입니다.
오래전에 개봉했는데 그때 코메디영화로 인식되었던지 웃자고 들어갔다가 영 웃기 힘든 
내용이라 김새서 흥행이 별로였다고들 하더군요. 

 

내용은 사실 코메디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 영화 속에 내가 있습니다.
저는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평생에 맛집 찾아가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니 요리에 관심 있을리 만무합니다. 지금도 요리에 그닥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동네에 맛집이 있어도 아마 안 갈 사람이 저일 겁니다.
요리에 정성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 너무 귀찮고 하찮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내가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채소'를 기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죠. 그런 내가 유기농을 따져서 농사를 지을 일은 전혀 없는 겁니다.
 
 
 

 

 

 

 

 

 

이 영화 주인공 '김씨'는 직장에서 해고되고 카드빚 독촉에 쫓기고, 애인에게 차이고 
그야말로 바닥까지 떨어져서 한강에 투신합니다. 
그리고 한강 한 가운데 밤섬에서 눈을 뜹니다. 
 
 
 

 

 

 

 

처음에 그는 자살하려고 목을 매려고도 해봤지만 그것도 실패합니다.
 
 
 

 

 

 

그리고 자포자기하고 그 섬에 그저 눌러앉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그는 무인도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고 자신만 낙오된 것처럼 절망스럽습니다.
이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영화는 소설이 아니라, 주인공의 마음 속이 자막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저는 그가 이런 생각을 했을 거 같습니다.
 
내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내 삶을 다시 바로 잡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밤섬에 떠내려온 쓰레기더미에서 짜장라면 봉지를 줍습니다.

 

 

 

 

 

 

 

 

 

 

 

그 안에는 사용하지 않은 짜장스프가 있었습니다.
그 스프에서 그는 뭔가를 봅니다.
'희망소비자가격'에서 그는 "희망"이라는 글자만을 봅니다.
 
네. 그는 이 짜장스프에서 '희망'을 찾습니다. 
희망을 발견합니다.
 
 
 

 

 

 

 

짜장면을 먹기로 결심하고 그는 땅을 일굽니다.
농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도시농부가 됩니다.
 
 
 

 

 

 

 

마침내 밭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모아 로빈슨 크루소처럼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싹이 틉니다. 

 

 

 

 

 

그리고 옥수수가 자랍니다.
벌써 몇달이 지났습니다.
 
이때... 멀찌감치 한강변 아파트에서 한 사람이 이 사람을 몇달째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김씨가 짜장면을 먹으려고 농사를 짓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죽하면... 오죽 먹고 싶으면 저기에서 살면서도 농사를 지을까...
가엾게 여긴 그는 김씨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배달 시킵니다.
 
 
 

 

 

 

 

우리나라 어디건 가는 짜장면 배달원이 밤섬까지 오리배를 타고 가서 짜장면을 배달합니다.
그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짜장면이었다면 그는 기쁘게 그것을 받아야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거절하고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찾는 '희망'은 짜장면 한 그릇이 아닌 겁니다.
그가 농사를 짓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가 아닌 겁니다.
먹기 위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기르는 그 과정,
농사 짓는 그 과정이 바로 그가 찾는 '희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완성된 짜장면을 거절하고, 농사를 짓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확을 하게 됩니다.
 
 

 

 

 

초라하고 소박한 수확물이 모였습니다.

 

 

 

 

옥수수 한 알 한 알 알뜰하게 모아서 갈아서 분말을 만듭니다.
몇달을 힘들여가며 길러낸 것들입니다. 
정성들여 갈무리합니다.
 
 

 

 

 

 

마침내 반죽을 해서 면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고 기다렸던 짜장면 한 그릇을 먹게 됩니다.
 
그가 거절했던 짜장면과 지금 먹는 짜장면이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그는 쉽고 편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을 거절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얻는, 느리게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농사라는 것은 절대로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서는 결과물을 손에 쥘 수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기초가 중요하고 잔꾀가 통하지 않고 한발한발 정성들여 매번 매시간을 
생략없이 지내야만 결과를 손에 쥘 수 있는 일입니다.
 
그가 살아온 삶은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농사의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이 걸어온 삶을 되짚어봤을 것입니다. 
옥수수 한 개를 위해서 오래 기다리고 노력해야하는 삶, 
그것이 자신이 살아온 방식, 세상을 본 방식을 다시 볼 수 있게 했을 것입니다.
 
농사를 지은 것은 그래서 짜장면 한 그릇이 목적이 아니라, 짜장면 한 그릇을 얻기 위해 
일하는 과정이 목표인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놓친 것들이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항상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했고, 사소하고 소소한 삶의 작은 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당연히 먹을 것을 위해 소비하는 시간, 정성이 너무 아까웠고 답답해보였습니다.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먹을 것을 위해 들이는 모든 것들이 낭비 같았습니다.
그것이 삶을 공허하게 하고 중요한 것을 잃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삶은 더 중요하고 큰 일에 집중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급히 짜내느라 성글성글하게 짜낸 목도리와 같았습니다.
두르고 둘러도 허전하고 목이 서늘한 목도리.
꼼꼼하고 촘촘하게 짜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느리냐고 했지만, 결국은 내가 짠 성근 목도리를 다시 풀어서 꼼꼼하게 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생 중반기에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가장 무시하고 신경 쓰지 않았던 내 몸을 챙기는 것.  먹을 것을 챙기는 것.
그러나 그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고, 그 버릇은 하루 아침에 고쳐질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은 과정을 촘촘히 걸어가야하는 농사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농사는 얕은 수가 통하지 않고, 오래 기다려야하며, 많은 손길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수확해서 집에 가져오면 갈무리라는 엄청난 일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처음엔 수확한 채소를 갈무리하며 '이걸 할 시간에 일을 하면...'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아마도 김씨도 그런 생각들을 수없이 했겠지요.
 
그리고 마침내 내가 기르고 수확한 것들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교훈과 책을 통해서도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꼈습니다. 어릴 적, 단 한번도 정성들인 식탁과 도시락의 기억이 없었던 것이 다른 결핍보다 더 컸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수없이 손이 가는 반찬을 만들어 가족에게 먹이는 주부의 손길이 왜 중요한지 비로소 알았습니다.
집밥이 왜 중요하며, 그것을 만드는 그 시간과 정성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어떻게 크게 하는지를 저는 농사를 지으면서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결핍의 이유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먹는 것이 익숙치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노력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즐겁게 기르고 갈무리하는 일을 시간을 들여 정성들여 합니다.
내가 그렇게 정성들인 음식을 먹어보지 못하고 자랐다고 해도
나까지도 나 자신을 그렇게 대접하지 않으렵니다.
내 마음의 결핍을 채우는 방법이 이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하루종일 요리를 하고 채소를 다듬어도 초조하지 않습니다. 
한심하고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도 전혀 안듭니다.
국 한그릇을 만드는데 신경을 쓰고 맛나게 먹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저는 비로소 제가 무엇이 결핍이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거나 말거나, 먹는 것을 즐기지 않더라도, 이것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많은 분들에게 이것을 권합니다.
이미 지나온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돌봄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의 그 음식을 다시 찾아먹을 수도 없습니다.
이미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내 스스로 그 시간들을 풀어서 다시 짤 수는 있으니까요.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소박한 일을 통해 차근차근 삶을 다시 밟아본다면
마음의 힘듬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러다보면, 그 과정이 끝나는 날, 맛난 짜장면으로 내가 무사히 과정을 거쳤다는 상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게 되겠지요...
먹을 것이 주는 힘, 그것의 치유 능력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이 겨울, 저는 작년 한해 갈무리해둔 채소를 여기저기에서 꺼내서 먹으며
이 힘든 시기에 위로를 받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더운 여름 수고한 그 흔적들이 나를 치유합니다.
내 손에서 만들어진 먹을거리는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이 책은 위 글을 포스팅한 올빼미화원 의 주인장 올빼미 님의 책입니다. 예전 도시농업전문가양성과정을 이수하면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책 제목 그대로 농사가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도시분들도 텃밭농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예쁜 삽화와 친절한 설명을 통해 비교적 알찬 내용으로 구성된 좋은 책입니다. 올빼미 님의 블로그에서도 자료를 구할 수 있지만 책으로 구해 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요즘 날이 풀리면서 황사가 꽤 심하네요. 가족분들 호흡기질환 조심하시고 조만간 뵐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